[인터뷰] 정병길 감독, '악녀'의 현란한 액션을 말하다

입력 2017-06-17 08:00 | 수정 2017-06-17 15:43
enews24 오미정 기자

그 현란하고 살벌한 영화 '악녀'의 연출가는 참 수줍었다. 진짜 이 사람이 '악녀'의 연출가인가 싶다. 정병길 감독이다. '악녀'의 주연배우인 김옥빈은 정 감독에 대해 주인공 숙희를 닮았다고 했다. 액션에서는 한없이 공격적이지만 사랑에는 수줍기 짝이 없는 여자 숙희. 김옥빈이 정 감독과 숙희가 닮았다고 하는 이유를 알것 같다.

그런데 정 감독은 외모마저도 순박하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프로필 사진과 영 딴판이다. "프로필 사진은 대체 뭐냐"고 놀렸다. 그랬더니 "예전 사진인데 일부러 안바꾸고 있다"고 웃었다.

정 감독의 이런 캐릭터와 달리 영화는 그야말로 액션의 향연이다. 오프닝에서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비디오 게임에서 볼 수 있는 1인칭 시점으로 액션 시퀀스를 구성해 긴박감을 살렸다. 오토바이 체이징과 함께 펼쳐지는 장검 액션도 볼만하다. 한복을 입고 비녀로 싸우는 액션 시퀀스도 숨막힐듯 화려하다.

압권은 엔딩 액션이다. 마을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김옥빈과 신하균의 액션은 전에 본적이 없는 미장센이다. 시점이 계속 이동하는데 놀랍게도 롱테이크다. 관객은 액션의 감상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칸에서 찬사를 받은 부분도 영화의 이 액션신이다.


정 감독은 앞서 '내가 살인범이다' '우린 액션 배우다'로 뛰어난 액션 연출력을 보여준 바 있다. 물론 '악녀'의 액션신이 훨씬 화려하긴 하다. 정 감독 역시 서울 액션스쿨 출신이다. 그래서 액션 장면이 유난히 화려하다. 정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영화가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어떤 심정인가.

"지난 1년을 3년처럼 살았다. 좀 쉬고 싶은 마음이다.(웃음)"

-이 영화를 기획한 이유는?

"한국에는 여자 액션 영화가 거의 없다. '악녀'를 기획할 때에도 주변의 반대가 많았다. 여자 액션 영화는 안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액션신이 정말 화려하다. 연출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액션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기대감이 있다.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지도 못한 새롭고 신선한 액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블록버스터처럼 큰 광경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기때문에 속도감이 주는 불안함과 무서움을 최대한 살려 액션으로 만들고자 했다. CG 등 특수 효과를 최대한 배제한 채 실사 촬영을 추구했고, 대부분의 액션 장면 역시 대역 없이 배우들이 직접 연기했다. '악녀'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독특한 액션 시퀀스가 돋보인다.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하면 아무도 하지 않은 앵글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시각적으로 새로운 액션 영화는 무엇일지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기존 영화에서 봤던 액션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레퍼런스 자체를 찾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비주얼을 생각하며 작업했다. 평소에도 무의식적으로 길거리 자동차를 보며 '이렇게 뒤집어지면 어떨까' 하고 새로운 비주얼을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 관객에게 어떤 장면을 보여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 이걸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액션에 대해 애정을 드러내는 이유는.

"액션 영화는 찍을 때 주는 쾌감이 있다. 처음 비주얼을 상상할 때에는 과연 이게 실사화가 되고 영상이 될까 하는 의문을 갖는데, 막상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그 재미가 남다르다. 액션 시퀀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남들이 하지 않은 부분을 창작하는 재미가 있다. 어렸을 적 꿈꿔왔던 화가를 포기하고 영화 감독이 됐다. 액션이라는 장르는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새로움, 그 이상의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김옥빈에게만 너무 고생을 시킨 것 같다.

"유리창 밖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내가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했다가 부상을 입으면 욕을 먹을 것 같더라. 마침 무술감독이 말렸다.(웃음) 잘 말린 것 같다."

-김옥빈을 캐스팅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쓰고 나니까 김옥빈이라는 배우가 들어왔다. 김옥빈에게 시나리오를 줬고, 그 자리에서 OK가 됐다. 기대보다 잘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김옥빈은 진정한 액션 마스터다. 이렇게 빨리 습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액션에 대한 습득 능력이 빨랐다."

-신하균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신하균은 내가 29세 때 기획하다 엎어진 영화가 있는데, 그 작품 주연배우로 생각했던 배우다. 그런데 작품에 들어가지 못해 형에게 항상 미안했다. 가끔 연락하고 보는 형이다. 이 영화를 제안했는데, 역시 흔쾌히 승락했다. 사람이 워낙 편하고 좋다. 감독의 의견도 정말 존중한다. 영화를 본 사람은 김옥빈의 원탑 영화가 아니라 김옥빈과 신하균과 투톱 영화라고들 하신다. 그만큼 중상 역을 맡은 신하균의 역할이 컸다. 너무 감사하다."

-숙희를 좋아하는 배우 성준도 풋풋하더라.

"숙희의 내면은 순수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인다. 숙희가 숨을 쉬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숙희의 딸로 나온 아기 배우의 활약이 대단하다.

"꼬마에게 '악녀'는 영화가 아니라 다큐였다. 실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웃음) 오디션을 보고 뽑았다.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연기는 처음이다. 모험이었지만 그냥 함께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에는 연기를 시키는 것보다 일단 친해져야 한다."

-영화를 찍으며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

"힘들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촬영 막바지였던 65회차 때 많이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몸도 아팠다. 게다가 2회차를 찍어야 하는 장면인데, 예산이 오버되는 바람에 1회차로 줄였다. 그래서 장면의 퀄러티가 떨어졌다. 그래서 더 화가났다. 예전에 이영표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운동을 열심히는 하지만 나보다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은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내 상황 같아서 서럽더라. 나도 열심히는 하는데,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은 많다."

-영화를 끝내고도 그런 마음이었나.

"영화를 찍고 난 후에 후련하고 깨끗한 느낌이 아니라, 왜 이렇게밖에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 들었다. 속상해서 많이 울기도 했다. 이렇게밖에 못한 것도 화가 나고, 알면서도 포기해야 해서 화가 났다. 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시간까지 상황을 끌고와야 했던 것도 슬펐다. 누군가의 탓이 아니라 내가 부족한 것 같아서 괴롭다. 피눈물이 난다는 얘기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본인이 그렇게 자책하지만, 사실 연출자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많지 않은 나이인데 벌써 세번째 장편 작품이다. '나는 살인범이다'는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게다가 이번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에까지 갔다왔다.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중간중간에 너무 힘든 시간이 많았다. 내가 29세에 입봉했는데 사실 그 때에는 어린 나이인 줄도 몰랐다. 데뷔작인 '우린 액션배우다'(2008)가 잘 됐다고 하시지만 그게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안착은 아니었다. 그 작품 이후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졌다. 다행히 '내가 살인범이다'(2012)는 잘 됐고, '악녀'도 투자가 잘 됐다."

-'악녀'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초청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초청 발표 3일 전에 칸에 가는 꿈을 꿨다. 깨보니까 꿈이더라. 그래서 안되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꿈을 또 꿨다. 신기했다. 그래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변에서도 좋은 꿈들을 줄줄이 꿨다. 우리 형은 유명 인사를 만나는 꿈을 꿨다고 했고. 김서형 배우는 떡을 돌리는 꿈을 꿨다. 초청 발표를 들었을 때 정말 너무 기뻤다."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안타까운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지만 열심히 찍은 영화다. 기존 액션 영화에서 보지 못한 신선함이 있다."

사진 = 허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