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윤석 "'1987', 과거만 그린 것 아니다..현재와 미래의 이야기"

입력 2018-01-06 08:00 | 수정 2018-01-08 11:27
enews24 오미정 기자

모든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김윤석지만 영화 '1987'(연출 장준환) 속 김윤석은 더욱 특별했다. 완벽한 연기를 통해 독재정권의 초상을 완성해낸 그다. 뜨거웠던 1987년은 그의 연기를 통해 생생하게 현대로 옮겨졌다.

그가 맡은 박처장은 민중들과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이희준 김의성 설경구 고창석 등 프로타고라스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릴레이를 펼칠 때 강력한 안타고니스트 박처장은 영화를 관통하며 독재정권을 수호한다. 그리고 철옹성같던 박처장이 몰락한다.

김윤석이 악했기에 다른 배우들의 선함이 강렬하게 대비됐다. 영화는 그렇게 독재의 불합리성을 그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윤석이 있었다.


-'1987'을 어떻게 봤나.


"영화적으로 매우 영리한 작품이라고 본다. 안타고니스트에 저항해 프로타고니스트들이 하나둘씩 모여 계란을 던진다. 그리고 결국 안타코니스트가 무너져내리는 구조다. 그 구조가 독톡하고 신선했다."

-이 영화 시사회 당시 '1987'이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굿 펠라스' 같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이 영화 시사회 때 장준환 감독, 하정우와 같이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영화적으로만 이 영화를 보자'고 말했다. 실화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현란하고 유려했다. 촬영 역시 대단했다. 잘 짜여진 갱스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적으로 볼 때에도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영화에서 거대악 박처장 역을 맡았다. 어떻게 이 캐릭터를 준비했나.

"실제로 그 분이 이북 사투리를 썼다. 그래서 이북 사투리를 준비했다. '황해'를 찍을 때 썼던 조선족말과 이번에 쓴 이북 사투리는 말투가 많이 다르다. 새롭게 준비했다. 외모도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했다. 하관을 좀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마우스피스를 꼈다. 또 머리를 올리고 M자로 헤어라인을 만들었다. 우람해 보이게 하기 위해 몸에 패드를 넣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정성들이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처음에는 박처장이 나인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더라."

-1987년은 본인에게 어떤 해인가.

"20대 때 나는 연극만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더라도 모두 집회에 나갔다. 대자보도 다 썼다. 복도마다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휴교령도 계속 내려졌다. 나는 격렬한 운동권이 아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마음이 빚이 많이 생긴다. 희생된 사람들은 1987년에서 시간이 멈췄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재를 살고 있다. 우리가 희생된 분들을 대신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느껴진다. 여러번 얘기한대로 나는 박종철 열사의 혜광고등학교 후배다."

-영화 시사회 당시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대사를 내가 할 줄 몰랐다고 했다.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정말 내가 이 대사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다. 나는 당시 사건과 가장 멀리 떨어진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 대사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에게는 너무 유명한 말이다. 말 자체가 넌센스여서 정말 많이 회자됐다. 영화를 통해 다시 들어도 황당했다."

-'1987'에 일찍 합류한 배우다. 김윤석 이후로 좋은 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다들 이 이야기의 소중함과 진성성에 공감했다. 그 다음으로 중요했던 것이 장준환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다들 장준환 감독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추격자' '황해'에 이어 하정우와 다시 만났다.

"하정우 역시 초반에 영화 합류 결정을 내렸다. 하정우가 최 검사 역할을 잘 할 것이라 믿었고 정말 잘 해줬다. 촬영을 할 때에는 두 번 만났다."

-우현은 이 영화의 당사자다.(연세대학교 신학과 84학번인 우현은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맡으며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해 7월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 집회 당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우 안내상과 함께 행사를 이끌었다. 우상호 의원이 영정을 들었고, 우현은 태극기를 들고 좌측에 섰다.) 우현은 어떤 말을 했나.

"현이 형이 심각하게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촬영 중 술을 한 잔 하며 이한열 열사에 대한 추억을 툭툭 던지듯 얘기했다. 형에 따르면 그 당시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나면 급하게 도망을 치느라 물건을 많이 분실한다. 시위가 끝내면 시위 참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위 장소에 떨어진 분실물을 모아놓고 자신의 물건을 찾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끝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분실물이 바로 이한열의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이였다. 현이 형이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장준환 감독의 아내인 배우 문소리는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많이 했다. 이번 영화에도 도움을 많이 줬다고 들었다.

"마지막 장면 집회신에서 자문을 많이 해줬다. 목소리 출연도 했다. 학창시절에 집회를 많이 해봐서 확실히 다르더라. 많은 도움이 됐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영화의 구조상 배우들이 모두 모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술자리도 없었다. 워낙 바쁜 배우들이 합류를 해서 스케줄 맞추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출연하는 부분만 알뿐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많이 보지 못했다. 시사 때 영화를 보니까 굉장히 새롭더라."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에 이어 장준환 감독과 또다시 함께 했다. 소감은

"장준환 감독이 워낙 섬세하다. '화이' 때에도 그랬는데, 이번엔 그 때보다 더 섬세했다. 본인도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촬영이 더 길어졌으면 아마 병원에 실려갔을 것이다."

-1987년의 함성과 2016년의 촛불이 연결된다. 어떤 기분이 들었나.

"촛불집회와 1987년 6.10 항쟁과의 교집합이 너무 많다. 내가 시사에 초대한 한 지인이 연세대 출신인데, 6.10 항쟁 때에도 현장에 있었고, 촛불집회에도 나갔다더라.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1987년과 현재가 교집합을 갖고 연결이 되어 있듯이 영화 '1987'은 그 당시를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레미제라블'이나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가 과거를 그려도 현재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과 같다."

-연출은 언제 하는 것인가.

"허언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웃음) 사실 나는 연극을 할 때 연출도 많이 했었다. 연극 시나리오도 많이 썼다. 연출이라는 작업이 낯설지 않다."

-'1987'을 관객이 꼭 봐야하는 이유는.

"2017년의 마지막 영화였고, 6.10 항쟁의 30주년이라 더 의미가 깊다. 실화가 아니더라도 영화적 재미가 상당하다. 정말 놓쳐서는 안되는 작품이다. 게다가 유명 배우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영화 '1987'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