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작' 황정민, "데뷔 이래 처음 '도저히 못하겠다' 토로"

입력 2018-08-10 17:00 | 수정 2018-08-10 17:41
enews24 고수진 기자

그의 호탕한 웃음에 긴장이 풀렸다가도, 어느새 서늘한 눈빛에 숨죽이게 된다. 러닝타임 137분간 관객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배우, 황정민이다.

느와르, 갱스터, 코미디, 미스터리, 시대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공감과 전율을 자유롭게 오간 황정민이 '공작'을 통해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섰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극. 황정민은 극중 육군 정보사 소령 박석영에서 안기부로부터 스카우트 돼 흑금성이란 암호명으로 북파된 스파이로 전향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한국 첩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해 낸 스파이로 변신한 것. 황정민은 평범한 사업가로서의 호탕한 박석영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한 스파이 흑금성, 두 얼굴을 오가며 '공작'의 긴장감을 책임졌다. 황정민표 스파이 흑금성은 매 신 서늘한 존재감과 인간적인 정감을 자유롭게 오가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됐다.

"흑금성 실화를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다"는 황정민. 그가 전하고 싶었던 '공작' 이야기를 최근 서울 팔판동 모처에서 만나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여름 성수기면 늘 관객과 만나고 있다.

"핫한 시기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 감사하다. '공작'이 꼭 잘 됐으면 좋겠다. 텐트폴 영화들이 나와야 할 자리에 '공작'이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실존인물 박채서를 연기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는 그 인물을 만나보고 싶어하지 않는 편이었다. 연기할 때 선입견이 생길까봐 꺼려한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달랐다. 대본 읽자마자 박채서 선생님을 정말 뵙고 싶었다. 어떤 신념을 가졌길래 이런 일을 하게 됐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게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두 번이나 보고 온 사람이니, 그 사람을 본 느낌을 물어보고 싶었다. 처음 딱 대면했을 때 받은 느낌은 눈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벽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박석영과 흑금성, 1인 2역을 오갔다.

"등장인물이 서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책상 아래는 칼들이 날뛰고 있다. 게다가 난 1인 2역을 해야했다. 만약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1인 2역이라도 할 수 있는게 정말 많았을 텐데 사실성을 갖고 임해야 하다 보니 제약도 많았다."

-흑금성을 표현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기존의 첩보 영화가 완전히 결이 다르지 않았나. 촬영 전까지만 해도 좀 쉽게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막상 해보니까 힘들었다. 감독님이 모든 대사가 액션을 보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저히 못하겠더라. 배우 각자 긴장감을 갖고 대사를 해도 섞이지 않으면 살지 않는다. 배우들끼리 아무리 연기가 어려워도 힘들단 얘기하는게 쉽지 않은데, 이성민과 고려관에서 마주하는 장면에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내용도 캐릭터도 녹록치 않은 영화다. 그럼에도 선택했다.

"촬영 때만 해도 분위기가 정말 안 좋았다. '이거 개봉할 수 있나, 우리 잡혀가는거 아닌가' 우스갯 소리로 그런 말도 했다. 그런데 찍다보니 나중엔 우리가 아니면 누가하겠냐는 분위기로 서로를 다독였다."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나?

"지금까진 오락성이 짙은 영화도 많이 해봤다. 그런데 '공작'이란 영화는 실화의 충격성, 그리고 이를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 가장 먼저 들더라. 그 다음은 연기적으로 나를 옥죄게 만들고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들게하는 작품이었다. 내 바닥을 드러나게 한 작품이랄까. 그동안에 해왔던 방식이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해왔지만 늘 하던 방식대로 연기해왔단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연극 '리차드3세'를 한 거다."

-어떤 순간에 바닥을 경험했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주하는 신을 찍을 때다. 스케줄상 3일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대사량도 많아서 NG 내면 안됐다. 진짜 김정일과 싱크로율이 엄청난 기주봉 배우가 들어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툭 치면 바로 나올 정도로 준비했음에도 엄청 버벅댔다. 마치 누가 나를 밧줄에 꽁꽁 묶어놓은 기분이었다."

-'공작'이 필모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보니 동시대에 살고 있는 관객들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다. 남북한 분단을 소재로 할 수 있는 한국 영화의 특수성도 담겼다. 광대는 관객들과 얘기하고 싶은 존재다. 그러려면 소통이 되는 이야기여야 한다. '공작'은 그런 의미를 모두 담은 영화다."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